1. 산행일자 : 2007. 11. 1.(목)
2. 산행장소 : 치악산(雉岳山, 1,288m)
3. 참석인원 : 산지기팀 8명
4. 산행거리 : 12.8㎞ (약 05:45 소요)
5. 산행사진
▲ 구룡사 경내의 모습. 왼쪽 아래가 사천왕문.
아득한 옛날이라고 할 천삼백년 전의 일이다. 메마른 품이 학같은 늙은 스님 한 분이 원주지방에 찾아와 절자리를 두루 고르고 있다가 관서우 거산 치악산을 향해 떠났다. 이 스님의 이름은 무착대사라고도 하고 의상조사라고도 하나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원주서 치악산을 향해 육십여리 길을 가던 대사는 그 곳에서 다시 시오릿길을 더 가서 지금의 구룡골에 멎었다. 스님이 사방을 살펴보니 동쪽으로는 주봉인 비로봉이 솟아 있고 다시 천지봉의 낙맥이 앞을 가로질은 데다가 계곡의 경치 또한 아름다웠다.
절을 세울만한 곳이군. 그러나 대웅전을 세우려면 저 연못을 메워야겠는데.....? 대사는 발을 옮겨 연못가로 갔다. 그때 그곳에 있던 큰 연못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 연못을 메우자니 모처럼 용이 사는 것을 쫓아야겠고 난감한 일이구나.......? 대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연못에 살던 용들이 들었다. 그리고는 대사를 향해 "대사님이 벌써 우리를 내어 쫓을 생각을 하시나 우리도 마음이 안놓여 살수가 없오, 대사와 우리가 서로 내기를 해서 우리가 이기면 대사가 이곳에 절을 못 지을 것이요, 지면은 선뜻 자리를 내어드리리다." 했다. 대사가 "너희들이 무슨 재주를 부리려느냐?" 하느냐" " 그것은 잠시 두고 보시면 압니다."고 대답한 용들은 연못에서 날아 하늘로 치솟더니 뇌성벽력과 함께 우박같은 비를 쏟아놓았다.
이 바람에 근처의 산들은 삽시간에 물에 잠기고 대사 또한 물속에 빠져 죽는가 했으나 대사는 태연하게 앉았다가 비로봉과 천지봉 사이에 배를 건너 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동안 비를 퍼부은 용들은 이만하면 대사가 물속의 귀신이 되었겠다 생가하고는 비를 거두고 내려왔다. 그러나 뜻밖에도 대사는 배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홉 마리의 용들이 다 내려오자 부시시 일어난 대사는 "너희들의 재주가 고작 그것뿐이냐 이제 내가 조화를 부릴것인즉 너희들은 눈을 크게 뜨고 잘 지켜 보아라."하고 부적을 한 장 그려 연못 속에 넣었다.
얼마 안있어 연못에서는 더운김이 무럭무럭 오르며 큰 연못의 물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물속에서 뜨거움을 참다못한 용들은 뛰쳐나와 한다름에 동해바다로 달아나고 말았다. 그런데 이 아홉 마리의 용 가운데 한마리의 용이 눈이 멀어서 미쳐 달아나지를 못하고 근처에 있는 조그만 연못으로 옮겨 앉았다.
용들이 달아나자 대사는 못을 메우고 지금의 구룡사 대웅전을 지었다. 한편 뜨거운 물에 쫓겨 달아나던 용들은 얼마나 다급했던지 구룡사 앞산을 여덟 개의 골이 치어있으며, 이때 미쳐 도망하지 못한 눈먼 한 마리의 용은 구룡사 옆에 있는 용소에서 지난 왜정때까지 살다가 그해 여름 장마때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한다.
★ 아홉구(九) 대신 거북구(龜)자를 쓰게된 연유
본래 구룡사는 스님들의 수양도장으로 세워졌으나 오랜 세월을 두고 흥망성쇄에 따른 곡절이 많았다.
이조에 들어서면서 치악산에서 나는 산나물은 대부분 궁중에서 쓰게 되어 구룡사 주지스님이 공납의 책임자 역할까지 하게 되었고 좋거나 나쁘거나 구룡사 스님의 검사 하나로 통과되는 지라 인근 사람들은 나물값을 제대로 받기 위해 별도로 뇌물을 받치기도 했다. 견물생심이라 아무리 부처님같은 스님이라 할지라도 여기엔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하여 구룡사는 물질적으로 풍성하기는 하였으나, 정신도장으로서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럴 즈음 한 스님이 찾아와 몰락한 이 절을 보고 개탄하면서 이 절이 흥하지 못하는 것은 절로 들어오는 길 입구에 있는 거북바위 때문이니 그 거북바위를 쪼개 없애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절에서는 그 스님의 말을 믿어 거북바위를 쪼개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후부터 찾아오는 신도는 더욱 적어지고 거찰(巨刹 : 큰절)로서의 명성은 점차 줄어들었다. 급기야는 절문을 닫아야할 처지에 이르렀다. 이럴 때 어느날 도승 한 분이 또 찾아왔다.
"이 절이 왜 이렇게 몰락하는가 하면 그 이름이 맞지 않기 때문이오" 하고 말했다. 주지스님은 "그건 무슨 말씀이지요?"하고 물었다. "본시 이 절은 절 입구를 지키고 있던 거북바위가 절운을 지켜왔는데 누가 그 바위를 동강으로 내 혈맥을 끊어버렸으니 운이 막힌 것이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주지 스님은 재차 물었다. 그랬더니 그 도승은 거북이 이미 죽었지만 다시 살린다는 뜻에서 절의 이름을 아홉구(九)자 대신 거북구(龜)자를 쓰라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지금 현판에 새겨진 대로 치악산 구룡사로 불리우게 되었다.
▲ 대곡야영장의 멋들어진 단풍.
▲ 치악산 국립공원에서 코스별 난이도를 정하여 탐방객들에게 편의 제공하고 있는 것이 이채로움.
▲ 수량이 없어 폭포로서의 위엄성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세렴폭포. 갈림길에서 약 0.1㎞로 되어 있으나 실제론 약 50~70m정도 가면 됨.
▲ 모처럼 바람소리를 내기 위해 산행에 참가한 바람소리님. 동작도 빠르시지 벌써 혼자 올라가 포즈를 잡고 있네요.
▲ 선발대는 이곳을 지나쳐 갔으나 뒤쳐진 우리들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기로 하고 이곳 세렴폭포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답니다.
▲ 사다리병창길과 계곡길의 갈림길. 무릎이 좋지 못한 분들은 계곡길로 올라가 사다리병창길로 내려오는 것이 좋을 듯.
▲ 사다리병창안내도. 사람들이 넘 많아 진짜 사다리병창은 사진 못 찍었음.ㅋㅋ
▲ 비로봉 오르는 마지막 계단. 계단 위 봉우리가 비로봉이며, 계단 끝부분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음.
▲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치악의 단풍.
▲ 치악산 비로봉 정상석. 1995년 10월 25일 치악산관리사무소에서 설치하였네요.
▲ 점심 식사후 돌무더기 앞에서의 단체 기념사진.
▲ 비로봉 정상석에 모두 모였습니다.
▲ 비로봉 정상에서 약 300m 내려오면 상원사 가는 길과 구룡사 가는 계곡길이 나타나죠. 상원사 방향으로 직진.
▲ 헬기장에서 포즈를 잡은 심산유곡님과 영주와봉화님.
▲ 향로봉까지 가려던 계획을 접고 오늘은 요기 곧은치에서 관음사로 내려갑니다.
▲ 곧은치의 복잡한 이정목. 이리갈까 저리갈까 에라 모르것따. 춤 한번 튕겨보자.
▲ 곧은치에서 1.0㎞로 내려온 지점의 교량. 이쪽 관음사 산행로가 구룡사보다 편한 코스.
▲ 곧은치 탐방지원센터에 설치된 탐방로 안내도.
▲ 곧은치 탐방지원센터.
▲ 관음사 전경. 뒤에 보이는 건물이 대웅전.
▲ 빨갛에 물든 적단풍. 역광으로 인해 본연의 아름다움이 퇴색되어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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